제목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저자 정영목
출판사 소요서가
소요서가 서평단 활동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소요서가의 서평단 활동으로 만나게 된 정영목 교수님의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을 완독했다. 화사한 노란 표지와 아름다운 엽서가 함께 선물처럼 다가와 준 겨울 눈 속 꽃 같은 책이었다.
장욱진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남달랐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시절 피카소의 미술 세계를 접하며 영향을 받기도 한 듯하다. 이후 학교에서 퇴학 처분당한 후 화가 공진형의 화실에서 공부했고, 수덕사에서 불교를 접하고 중요한 인연인 나혜석과도 만나게 된다.
장욱진의 작품세계는 연대에 따라 1937-1949년의 자전적 향토세계(21-33세, 작품활동초기), 1950-1974년의 자전적 이상세계(34-58세, 작품활동중기), 1975-1990년의 종합적 이상세계(59-74세, 작품활동후기) 로 나누어진다. 시기마다 작품의 성격이나 표현법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장욱진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그려온 오브제들은 몇 가지로 비슷했던 것 같다.
장욱진의 활동당시(20세기)는 서구의 미학적 관념에 있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양상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한국적 모더니스트로 지칭할 수 있는 장욱진은 1)문화적, 전통적인 것에 대한 내부의 영향 2)신교육을 통한 서구의 모더니즘 사상, 외부의 영향 두 방향으로 집약된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p.50)
1960년대 앵포르멜 이전의 추상성에 대한 한국현대미술의 방향은 1)재현으로써의 형상성은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채 자연에서 관찰한 대상을 간결한 형태로 뽑아내거나 압축하거나 2)구상적, 또는 완전히 비구상적이든 기하학적 추상성을 보이는 경우이다.
장욱진의 1950-1960년대 그림은 설명적인 그림으로서의 요소가 풍부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상형화, 도상학적인 문자 역할을 한다. 이것은 작가의 관념적 마음 풍경을 전달하기 위한 의미로 작동하는 것이다.
장욱진의 그림은 작다. 그는 작품에서 물리적인 프레임과 스케일간의 관계를 일찍 깨닫고 있었던 듯 하다. <소녀>, <독> 등의 초기작품은 이미지를 화면에 꽉 채워 구심성이 강한 구도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후반부 작품으로 갈수록 레이어구조가 사라졌다. 수묵, 수채화처럼 화면의 질감이 묽고 엷어지면서 레이어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장욱진의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포맷은 삼각형으로 동양화 같지만 실제로는 동양화같지 않은 자기만의 포맷이다. 말년부터는 대각선 포맷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동세와 통일감을 느낄 수 있다.
장욱진은 그림에서 주로 여인, 특히 어머니나 부인을 모티브로 자주 그림을 그렸다. 화가의 여인상은 매우 자전적이고 심리적이었다. 또한 아이 또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화가는 일종의 ‘자폐적 자아의식’ 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작품에 표출된 듯하다. 장욱진이 그린 아이는 항상 가족의 핵심이자 천진무구한 자연의 표상이다.
화가는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해 가족 그림이 많았고 특히 나무 그림도 많이 그렸다. 장욱진의 나무는 종교적 심성과도 같이 하나의 관념으로 존재했다. 자신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넓혀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장욱진은 가고, 이제 그의 나무만 남았는가? 그가 살아생전 자주 이야기한 ‘산다는 것은 소모해가는 것’ 이란 말이 종교적인 울림을 가지는 까닭이다. (p.158)
그림은 자전적인 상징성을 띠게 되고, 현실은 모티브의 역할을 할 뿐이다. 장욱진은 그러한 자전적 성향을 바탕으로 탈속적인 이상세계를 표현했으며, 화면 속 풍경은 작가 자신이 살고 싶은 귀의 공간으로서의 향토가 된다. (p.161)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조형 요소들은 그것의 시각적인 외형만을 빌려온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닌 순수함과 간결함의 원시적 속성을 표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p.162)
장욱진은 불교 집안의 자녀이고 불교적 세계관과 설법에 조예가 깊은 집안 출신이다. 따라서 장욱진에게 불교란 종교라기보다는 문화적 아우라에 가까웠다. 17세에 만공선사와 인연으로 6개월간 함께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서구미학과는 다른 미학적, 조형적 태도를 보인다. 생존한다는 것은 육체를 소모해 가는 일이라는 사상을 띈다.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 “ (p.190)
이렇게 장욱진은 어려서부터 불교와 인연이 있었으나 직접적인 불교적 작품이 제작되는 시기는 50세 이후인 1970년대 이후이다. 장욱진에게 예술이란 내면세계의 표출이기도 하지만(서구 모더니즘의 미학) 깨달음의 과정과 깨달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것은 서구 모더니즘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장욱진은 예술을 넘어 도를 향했다. (p.207)
장욱진에게 그림은 가장 적합한 깨달음을 얻는 길이었다. 그림은 깨달음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으며 예술은 깨달음의 메세지이자 과정이었다.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혼돈스러운 나의 상태에서 참된 나를 찾는 것은 거짓된 나를 가지치기하는 데서 시작된다. (p.209)
장욱진에게 있어 평생의 화두는 자아의 발견과 자기에 대한 사유였던 듯하다.
장욱진의 그림은 어떻게 보면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해 보이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장욱진의 그림은 그의 삶 자체,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장욱진의 깨달음 그 자체이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그림임이 틀림없다. 항상 스스로를 사유하고 사랑이 많았던 화가의 작품이라서인지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평생을 그림과 예술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던, 어찌 보면 부처가 되는 길을 향했던 장욱진의 삶과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문득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또한 그처럼 내게 주어진 삶을 모두 소모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작고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하지만 아름답고 그 내면만큼은 모든 세계에 가깝고 부처에 가까운 장욱진의 삶과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정영목 교수님의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 보다 알기 쉽게 그의 삶과 그림을 접하고 싶다면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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